[기고] ‘희망의 버스’를 타러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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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1-05-30 09:52 조회31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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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희망의 버스’를 타러 가요 | ||||
6월 11일은 한진중공업 김진숙 지도위원 응원 가는 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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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에 죽은 전태일의 유서와 세기를 건너 뛴 2003년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세기를 넘어, 지역을 넘어, 업종을 넘어, 자자손손 대물림하는 자본의 연대는 이렇게 강고한데, 우린 얼마나 연대하고 있습니까? 우리들의 연대는 얼마나 강고합니까? 저들이 옳아서 이기는 게 아니라, 우리가 연대하지 않음으로 깨지는 겁니다. 맨날 우리만 죽고, 맨날 우리만 패배하는 겁니다. 이 억장 무너지는 분노를,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이 억울함을 언젠가는 갚아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난 2003년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위에서 고공농성 129일만에 목을 매고 자결한 김주익 열사 추도사입니다. 이 추도사로 우리 사회 모두를 울렸던 김진숙. 벗 김주익을 생각하며, 그후 지난 8년 동안 방에 불을 때지 않고 살았다는 그. 화진여객 버스 안내양으로 시작해서 21살에 한진중공업에 최초의 여성용접공으로 들어 간 후 ‘스물여섯에 해고되고, 대공분실 세 번 끌려갔다 오고, 징역 두 번 갔다 오고, 수배생활 5년하고, 부산 시내 경찰서 다 다녀보'다 보니 어느새 머리 희끗한 쉰 두 살’의 해고노동자가 되어 있더라는 그.
그가 다시 폭력적인 정리해고에 맞서 2011년 1월 6일 새벽에 8년 전 지금과 똑같이 동료들의 정리해고를 막기 위해 김주익이 올랐던 85호 크레인에 오른 지 벌써 140여일이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그는 ‘85호 크레인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기에’, ‘이번 결단을 앞두고 가장 번민했’다고 합니다. 자신만은 "주익 씨가 못해 봤던 일, 너무나 하고 싶었으나 끝내 못했던, 내 발로 크레인을 내려가는 일을 꼭 할 겁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85호 크레인이 더 이상 죽음이 아니라, 더 이상 눈물이 아니라, 더 이상 한과 애끓는 슬픔이 아니라 승리와 부활"의 자리가 되도록 "아직도 85호 크레인 주위를 맴돌고 있을 주익 씨의 영혼을 안고 반드시 살아서 내려가겠다"고 합니다.
용접슬러그에 얼굴이 움푹 패이고, 눈알에 용접불똥 맞아도 아프다 소리도 못했던 공장이었다고 합니다. 교도소 짬밥보다 못한 냄새나는 깡보리밥에 쥐똥이 섞여 나오던 도시락을 주면 공업용수에 말아 먹어야 하던 공장이었다고 합니다. 한 달 잔업 128시간에 토요일 일요일도 없고 매일 저녁 8시까지 일하던 공장이었다고 합니다. 용접불똥 맞아 타들어간 작업복을 테이프로 덕치덕치 부쳐 넝마처럼 기워 입고, 한 겨울에도 찬물로 고양이 세수해가며, 쥐새끼가 버글거리던 생활관에서 쥐새끼들마냥 뒹굴며 살아야 하던 공장이었다고 합니다. 한여름 감전사고로 혈관이 다 터져 죽어도, 비오는 날 족장에서 미끄러져 라면발 같은 뇌수가 산산이 흩어져 죽어도, 바다에 빠져 퉁퉁 불어 죽어도 산재가 뭔지도 몰랐던 공장이었다고 합니다. 다친 동료들 문병 다니고 죽은 동료들 문상 다니는 시간이 잔업 다음으로 많았던 공장이었다고 합니다.
그 공장은 필리핀 수빅에 수조원에 달하는 공장을 지을 정도로 번성했습니다. 하지만 노동자들에게 돌아온 것은 무자비한 구조조정뿐입니다. 2010년에만 비정규직 포함 3000여명이 잘렸고, 300명이 강제휴직을 당했고, 울산공장이 폐쇄됐습니다. 경영이 위기에 처했냐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2011년 270여명을 다시 희망퇴직으로 정리하고, 나머지 170여명을 정리해고 통보한 다음날, 조남호 사주 일가와 주주들은 174억원의 고배당을 챙겨갔습니다.
정리해고는 비단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절망만이 아닙니다. 쌍용자동차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이 벌써 15명째 목숨을 잃었습니다. IMF 이후 이렇게 자본의 이윤만을 위해 잘려나간 우리 이웃들이 수백만입니다. 그들 대부분이 삶의 벼랑으로 몰려 900만 비정규직 시대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염려하지 않게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던 크레인 위에서도 오히려 ‘공기 좋고, 전망 직이고, 젤 좋은 게 뭔지 아십니까? 사람들이 다 알루 보입니다. 방이 좀 작아서 그렇지 발코니도 널찍해요. 봄이 오면 텃밭을 가꿔서 가을에 걷어 먹을 생각’이라고 눙을 치는 그. ‘아직 수맥 찾는 법을 몰라’, ‘양치질은 짝수 날만’ 하고, ‘세수는 윤석범 동지 장가 가는 날은 꼭 한다’라고 하는 그. 징역 살 땐 하루에 4,520원밖에 안쳐주더니, 오늘부터는 하루 손배 100만원짜리 인간이 되었다고, 이제야 제 가치를 인정받는 것 같다고 신나 하는 그.
이 피맺힌 절규가 끝날 수 있도록, 이제 우리 모두의 연대가 필요합니다. ‘동지들이 많이 모인 날은 삶 쪽으로, 동지들이 안 모이는 날은 죽음 쪽으로 위태롭게 기우뚱거리며’ 있었을 김주익의 마음이 이해된다는 김진숙. 그가 이겨서 내려올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가 아직도 85호 크레인 주변을 떠돌고 있는 김주익의 영혼을 곱게 안고 내려 올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의 절망과 분노가 안전한 평지 위로 내려 올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의 운명이 조금은 더 안전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너무나 많은 절망에 지쳤습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밀려날 곳이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죽을 수 없습니다. 벼랑에 서야 하는 것은 수천만 노동자들과 서민들의 등골을 빼먹으며 오늘도 너무나 배가 부른 자본들이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에겐 희망이 필요합니다.
6월 11일, 전국 각지에서 고공농성 150일째를 맞아 김진숙과, 인근 거제도에서 송전탑 고공농성 90여일째를 맞는 비정규노동자 강병재를 기억하고, 이 땅 모든 해고노동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로 향하는 ‘희망의 버스’가 출발합니다. 이 버스는 절망의 시대를 가로질러 희망의 시대를 향해 가는 연대의 버스입니다. 이 버스는 우리 모두의 존엄을 지키는 사랑과 저항의 버스입니다. 지난 시대와 결별하고 새로운 시대를 향해가는 희망의 버스입니다.
[희망의 버스 탑승 안내]
- 출발 일시 : 2011년 6월 11일 오후 6시 30분
- 출발 장소 : 서울시청광장 앞 재능교육비정규직 농성장 앞 버스 출발
- 서울 출발자 참가비 : 3만원
- 참가비 입금계좌 : 박래군(농협 351-0199-8560-53)
- 연락처 : 송경동(010-8278-3097)
송경동/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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